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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최랄라 사진전 <feel lost>

열무냥냥 2023. 6. 14. 0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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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코스메틱 브랜드인 바이레도와 함께 진행했던 최랄라 사진전 <Feel Lost> 

-  그가 상실했던 순간을 마주하면서 이상하게도 위로받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최랄라 사진전 <feel lost>

 

  흔히 상실을 떠올리면 가까운 이의 죽음으로 인한 경험을 주로 이야기한다. 죽음으로 인한 상실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상실 중에서도 가장 큰 상실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죽음 이외에도 사람마다 상실을 겪는 방법은 다양하다. 연인과의 이별도 상실로 볼 수 있으며 친한 친구와의 헤어짐 또한 상실의 종류 중 하나가 된다. 비단 죽음과 같이 큰 사건이 아니더라도 이러한 상실들로 하여금 우리는 감당할 수 없는 충격과 고통을 경험하게 된다. 상실은 트라우마를 남기고 이러한 트라우마는 인간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 상실로 인한 충격들로 심리적 상처인 트라우마는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으며 그만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생각해 보라. 당신의 상실은 어느 순간에 시작되었는가? 그 상실이 당신에게 어떤 상처를 남겼는가? 혹시 상실의 경험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최랄라 사진전, 에서 선보인 상실에 관해 일련 된 작품들을 주목해 보자.

 

 지난 2021년 4월 나는 용산구의 한 전시장을 찾았다. 사진작가 최랄라가 2018년 이후 3년 만에 그간 그의 작품들을 선보이는 곳이었다. 이전 전시를 통해 그는 ‘회화와 사진의 경계를 해체한 작가’라는 호칭을 얻으며 성황리에 개인전을 마쳤다. 사람들의 박수를 받았던 그였지만 한순간에 모든 것이 사라져 버렸다. 더 나은 작품을 찍어야 한다는 압박감과 그렇지 못한 현실 속에서 그는 방향을 잃고 말았다. 모든 것을 다 얻는 것만 같았던 잠깐의 시간을 뒤로하고 세계여행을 택했다. 혼란스러웠던 그는 자신이 현재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이해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세계 여행을 시작한 최랄라는 여행 중에 ‘검프린트’ 기법을 발견하고 자신의 작품에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지금은 휴대폰으로도 간편히 사진을 찍어 쉽게 인쇄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19세기에는 회화주의 사진에 주로 검프린트 기법이 쓰였다. 자외선 노광기나 햇빛에 감광시켜야 하는 작업으로 지금에 비하면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지만 그는 그래서 이 기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단 한 장을 뽑아내기 위해 섬세한 손길이 필요한 작업이기 때문이었다. 그의 작품들 또한 검프린트 기법으로 담아낸 그의 노력이 담긴 작품들이다.

 

 검프린트 기법으로 탄생한 작품들은 이전과 같이 필름 사진만이 가진 특유의 매력이 드러났고 그가 주로 대상으로 삼았던 여성의 뒷모습 또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 개인전과 달리 더욱 솔직한 감정을 담아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재밌어서 찍은 작품들을 보였던 과거와 달리 이제 그는 자신이 느낀 것을 사진으로 담아낸다. 그래서 이제 그의 작품에는 남에게 보여주기 싫은 부분도 사진에 모두 담겨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의 상실에 관한 작품들이 흥미로운 이유는 이런 그의 성장 과정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어린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는 것과 같이 그의 작품은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었다. 또 그 성장하는 과정이 작품에 고스란히 나타난다.

 

 전시장 중심이 되는 독립된 작은 방에는 여성의 뒷모습이 담긴 ‘her10'이 있다. 사진 속 그 여성은 이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의 작품이 되어준 여성 모델과 개인적인 친분을 유지할 만큼 가까운 사이로 지냈던 그는 여성의 죽음으로 인해 상실을 경험했다. 가슴 아픈 상실을 경험한 작가는 그녀가 없는 세상이 계속해서 아름답고 유유하게 흘러가는 것을 경험했다. 그런 세상은 감당할 수 없는 아픔을 겪는 동안 이질감을 느끼게 했고 그는 이질감과 상실의 감정을 사진으로 표현해내고 싶었다. ‘her10’ 이후의 작품들을 통해 그가 우리에게 어떻게 감정들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her10’에서 볼 수 있듯이 그의 작품에서는 주로 나체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 이는 대상을 단순한 피사체가 아니라 인간 자체로 보기 위한 그의 노력이다. 사람이란 저마다의 인생사를 가진 인간이며 외형을 넘어 그 이야기를 담은 대상의 내면까지 바라보기 원했기 때문이다. 실제 사진으로 담아낸 대상들과의 대화를 통해 사진으로 담아내기 전에 그들을 이해하기 위한 과정을 거쳤다. 이러한 과정들이 있었기에 그의 사진에서 깊은 감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작품을 내건 전시라도 어떤 곳에 어떻게 배치하냐에 따라서 전시의 완성도가 달라진다. 전시장은 작품과 향기 그리고 노래가 모두 조화를 이루는 공간이다. 작품을 넘어서 시각, 후각, 청각의 영역이 모두 합쳐져 그 공간 자체가 하나의 예술이 되는 것이다. 패션, 코스매틱 브랜드 바이래도와 함께 진행한 이 전시는 시각과 후각을 동시에 자극하며 깊은 여운을 남기는 듯하다. 작가 자신의 개인적인 상실을 담아낸 작품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공감을 일으킬 수 있는 데는 전시 공간의 탁월한 배치 또한 큰 부분을 차지한다. 교회를 개조해 만들어진 만큼 높은 천장과 아치형의 창문으로 들어오는 풍부한 햇빛이 그의 작품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누구나에게 그렇듯 내게도 비슷하지만 다른 상실과 트라우마가 있다. 과거는 달라도 아픔과 고통 그리고 우울함과 외로움의 감정은 공통분모라는 작가의 말처럼 최랄라의 사진을 통해 그 감정들 안에서 나의 모습을 꺼내어 보았다. 직접적인 위로의 말은 아니라도 작가 자신의 경험을 압축해 놓은 듯한 사진들을 보며 무뎌졌던 감정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사진은 본래 그런 것이라는 듯 그의 작품은 소리 없이 우리를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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